창덕궁 금호문
최근 수정 시각: (5년 전)
분류
금호문 |
1. 소개 [편집]
昌德宮 金虎門
창덕궁의 궁문이다. 돈화문의 서북쪽에 있으며 금천교와 마주본다.
정문인 돈화문을 주로 왕의 행차 같은 큰 의례에 이용하였기에 사헌부 대사헌을 제외한 승정원, 홍문관 같은 궐내각사[1]에 근무하는 관원들이 주로 이용했다.[2] 조선 후기에 각 문마다 출입하는 사람들을 관행적으로 고정하였는데, 이 때 금호문은 조정의 관리인 조신(朝臣)들이 이용하는 문으로 기능하였다. 1789년(정조 13년)에 정조가 그러지말고 각자 다니고 싶은 문으로 다니라고 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.#
현재도 이용할 수 있다. 다만 입장은 할 수 없고[3] 나가는 것만 가능하다.
창덕궁의 궁문이다. 돈화문의 서북쪽에 있으며 금천교와 마주본다.
정문인 돈화문을 주로 왕의 행차 같은 큰 의례에 이용하였기에 사헌부 대사헌을 제외한 승정원, 홍문관 같은 궐내각사[1]에 근무하는 관원들이 주로 이용했다.[2] 조선 후기에 각 문마다 출입하는 사람들을 관행적으로 고정하였는데, 이 때 금호문은 조정의 관리인 조신(朝臣)들이 이용하는 문으로 기능하였다. 1789년(정조 13년)에 정조가 그러지말고 각자 다니고 싶은 문으로 다니라고 했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.#
현재도 이용할 수 있다. 다만 입장은 할 수 없고[3] 나가는 것만 가능하다.
2. 이름 [편집]
3. 역사 [편집]
4. 구조 [편집]
5. 여담 [편집]
- 1926년 4월 28일에 송학선 의사가 사이토 마코토 조선 총독을 암살하려다 실패한 의거의 현장이다. 거사 이틀 전에 순종황제가 창덕궁에서 승하했다. 그리고 창덕궁 내 빈소로 가는 출입문을 금호문으로 정하였다. 송학선 의사는 조선총독부의 고관들이 문상을 하러 금호문을 드나드는 것을 보고 사이토가 지날 때를 노려 암살하기로 하였다. 그리고 4월 28일에 일본인 3명이 탄 자동차가 금호문으로 나올 때 뛰어들어 안에 타고 있던 일본인 2명을 죽이고 달아났다. 그러나 송학선 의사가 죽인 인물은 사이토가 아닌 다른 일본인이었다.[5] 결국 송학선 의사는 체포당한 뒤 사형 선고를 받고, 이듬해 5월에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. 현재 창덕궁 앞에 ‘송학선의사 의거터’란 표지석이 있지만 금호문이 아닌 돈화문 근처에 세워져있다.송학선 의사 의거 터 표지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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